시사
1984 VS 2009. '빅브라더' 의 재구성
이 글은 아고라 네티즌과의 활발한 토론을 위해 민주노동당 미디어홍보팀에서 참여한 글입니다.
길가의 광고 포스터에는 언제나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동전에 있는 빅브라더의 눈마저 스미스를 내려다보고 있다. 빅브라더의 눈은 동전, 우표, 책표지, 깃발, 포스터, 담뱃갑 등 어디에나 있다. 늘 그 눈이 감시를 하고, 그 목소리가 포위 스미스를 포위한다. 잘 때든 깨어 있을 때든, 일을 하든, 식사를 하든,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목욕할 때든, 침대에 누워있을 때든, 스미스는 빅브라더로부터 벗어나기가 불가능하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서 벌어지는 믿기지 않는 일들이다. 놀랍게도 이와 유사한 일이 2009년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12일 기무사가 민간사찰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기무사 대원이 촬영한 6mm짜리 영상 테이프와 사찰 내용이 기록된 수첩을 공개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기무사 민간사찰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2009년 서울에도 ‘빅브라더’가 존재했다
“저기 나왔네. 조금 떨어지면 시동 걸고 출발해. 지금부터 저 놈 특이사항들은 놓치지 마라”
7월 15일 서울에 사는 엄 씨가 집을 나서자 그의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 안에서 한 남자가 긴박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자동차 안에는 남자 서너 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곧장 엄 씨 뒤를 쫓기 시작했다.
한 명은 수첩에 엄 씨의 행동을 조목조목 적어 내려갔고, 다른 한 명은 카메라를 들고 엄 씨와 엄 씨가 이동하는 곳을 일일이 촬영했다. 이들은 국군 기무사령부 강원도 모 예하부대 기무부대원들이었다.
이들은 조직을 회사로 위장해 사무실을 차리거나 근접 사찰을 위해 주택가에 거점을 확보해가면서 사찰을 벌이고 있었다.(메모에 적혀 있는 ‘我(아) 거점 확보 -> 전세자금으로 활용’이라는 내용으로 봐서 거점을 확보해 장기적인 사찰 활동을 계획한 것으로 파악됨)
“버스 타고 이동하게 되면, 너도 버스 타고 쫓아가”
“부장님, 그런데 버스 안에서 촬영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보는 눈도 있는데...”
“그렇긴 하지만 최대한 눈치 못 채도록 요령껏 해 봐”
엄 씨가 오전에 집을 나선 이후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대원들은 엄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대원들은 엄 씨가 바깥에 있는 12시간 동안 20미터 이내 간격을 유지하며 밀착 감시했다.
다음날 아침 대원들은 자동차를 근처 대로변으로 이동시킨 후 정차시켰다. 대원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상가에 있는 ㄷ약국으로 한 여자가 나타나자 일제히 몸을 수그리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약국 주인으로 보이는 그 여자가 문을 따고 들어갔다. 엄 씨의 아내였다. 카메라를 든 대원은 렌즈를 확대해 엄 씨의 아내가 가게 정리를 하는 모습, 전화를 받는 모습, 손님과 대화하는 모습 등을 모두 도찰했다.
약 3일 동안 이 같은 업무를 별 탈 없이 소화한 대원들은 여관방에 모여 약식회의를 열었다.
“내일은 두 명씩 엄○○이랑 와이프 각각 나눠서 따라가.”
“차가 두 대는 필요할 것 같은데요? 감시 도구도 실어야하고...”
대원들은 이번 밀착 사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면서 회의에 열을 올렸다. 특히 기무사가 민간사찰을 한다는 사실이 들통 나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에 치밀하고, 조직적인 사찰 방안들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메모에는 ‘신변보장’ 이라고 적시돼 있음. 메모상의 활동 중 ‘불법적 요소’가 들어있어 활동이 드러나거나 문제가 될 경우를 우려한 것으로 파악됨)
회의가 진행되는 도중 책임자인 신 대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에서 온 전화였다.
“언제부터 붙어주실 수 있죠? 다음 주면 우리도 시간이 빠듯한데, 이번 주 안에는 안 될까요? 협조 잘 부탁드립니다.”
신 대위는 며칠 전 경찰에 수사지원을 요청했다. 경찰 측은 다음주부터 합류가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통상 기무사가 경찰과 동행하는 경우는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려는 목적이다. 군 사법권과 민간 사법권이 분리돼 있어 기무사가 독립적인 수사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원들은 기무사의 민간사찰이 위법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대원들은 약 1주일 동안 엄 씨와 그의 아내, 그가 만나는 사람들까지 모두 감시하며 그들의 인적 사항, 차량 번호 등을 모두 파악해내는 성과를 이뤘다. 그리고 수첩에 모두 기록해 놨다. 이 같은 성과를 이루는 데에는 만기 퇴역한 전직 기무사 대원의 도움이 컸다.
이번 사찰을 실행에 옮기기 전 민간사찰 경험이 전혀 없는 대원들에게는 사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력이 필요했다. 따라서 기무사 차원에서 특별히 80년대 중반 민간사찰 업무를 주로 도맡아 했었던 기무사 김 모 예비역 대위를 섭외했다.
김 대위는 10년 이상의 민간사찰 경력을 지닌 베테랑이었다. (메모에는 ‘만기 퇴역자?’라고 쓰여 있음. 수첩의 주인인 신 대위는 30대 중반으로, 요원을 돕거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전직 요원을 요구했고, 실제로 전직 요원이 동원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함)
대원들은 김 대위로부터 들키지 않고 차량미행 하는 법, 도청기기 사용법 등 사찰활동에 필요한 실무 내용들을 전수했다. 또한 김 대위는 대원들과 비밀 연락망을 구축해 꾸준히 사찰정보를 제공했다.
7월20일쯤 대원들은 강원도에 있는 부대로 돌아가 업무와 관련한 세미나가 열린 자리에서 부대장, 과장급 상관들에게 주간 업무를 보고하고, 건의사항을 제출했다. 이들은 고급 아파트를 출입하는 데 용이한 고급 승용차와, 추적에 필요한 장비 탑재가 가능한 승합차 등을 제공해달라며 중장기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김 대위가 귀띔해준 내용도 보고했다. 부대장은 이 모든 내용에 대해 승인 및 결재했다. (메모에는 ‘기동장비(소형)제한, 고급APT 출입시 소형차 곤란’, ‘과학 OO과 OO시 승합차(필요장비 탑재)필요 -> 중장기 예산 반영 요망’이라는 요구와 ‘검토하고 있음’이라는 답변이 적혀있음)
대원들은 더불어 새로운 사찰 지령을 전달받았다. 7월 마지막 주는 엄 씨와 친분이 있는 최 모씨도 밀착 감시하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대원들 중 일부는 다음 날부터 최 씨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최 씨의 동태를 모두 기록하고, 촬영하는 데 엄청난 공을 쏟았다.
평소 주위가 예민한 최 씨는 이 무렵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7월23일 동네 마트에 물건을 사러갔다가 나온 최 씨는 한 시간이 넘게 마트 앞에 시동을 켠 채로 그대로 정차돼 있는 승용차를 보고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 씨가 이동을 하며 백미러를 확인해 보니 마트 앞에 서 있던 승용차가 최 씨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꽤 먼 거리를 뒤따라 온 승용차는 최 씨가 좁은 골목으로 이동할 때도 따라서 이동했다. 최 씨가 집 앞에 차를 주차했고, 최 씨를 따라온 승용차는 집 앞을 지나 홀연히 사라졌다.
“야, 우리 본 거 같은데, 숙여!”
마트에서 나온 최 씨가 차량을 쳐다보자 대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안 들켰냐? 일단 따라가.”
대원들은 다시 최 씨의 자가용 뒤를 쫓았다.
대원들은 7월 말 최 씨를 따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까지 미행했다. 신 대위는 이날 최 씨 뿐만 아니라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과 연대투쟁을 벌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던 현장 분위기를 상세하게 스케치했다.
“어디 갔냐?”
현장을 스케치하다가 대원들이 최 씨를 놓쳤다. 신 대위가 차에서 내려 카메라를 든 채 최 씨의 행방을 추적했다. 신 대위는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신 대위의 모습에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당신 어디서 왔어? 카메라 내놔 봐.”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학생들이 신 대위를 붙잡고 들고 있던 카메라와 수첩을 빼앗았다.
기무사가 사찰한 사실을 알게 되다
8월5일 최 씨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실로부터 전화를 받고 국회로 갔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기무사에서 찍은 영상이라며 최 씨에게 동영상 파일을 보여줬다. 동영상을 본 최 씨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동영상에 최근 1주일 동안의 자신의 행적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던 것. 최 씨는 심지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엄 씨도 사찰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쩐지 그때 이상하다 했어...”
약 열흘 전 마트에서 자신을 따라오던 차를 본 순간부터 최 씨는‘미행을 당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최 씨는 이후 며칠 동안 불안감에 휩싸여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최 씨에게 이와 관련한 소식을 전해 들은 엄 씨와 그의 아내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최근 신경과 치료를 받기 시작한 엄 씨는 기무사 사찰 사실을 알고 난 후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증세가 더 악화됐다. 엄 씨 아내도 당분간 약국 문을 닫고 안정을 취하기로 했다.
이처럼 기무사 민간사찰의 희생자들은 당시 느꼈던 충격과 공포에서 여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횡행했던 군 수사기관의 민간인 사찰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2009년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이런 충격과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 사찰 대상자는 얼마 전 "마치 온 몸이 발가벗겨진 기분"이라며 허탈해했다. 우리가 그였다면 과연 어땠을까? '
기무사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대책위원장 맡은 최석희 당원 “피해자들이 직접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이뤄낼 것”
“‘혹시 뭐가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 당원이 있다. 그렇다 해도 이는 명백히 헌법에 보장된 시민권 침해다. 독재정권의 공작정치가 부활한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기무사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들이 스스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나섰다. 불법사찰 피해자들은 지난 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사건 조사와 구제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냈다. 피해자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석희 민주노동당 119민생희망본부 기획실장은 지난 8월31일 <진보정치>와 만나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 것”이라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 두차례 불법사찰 폭로에 대한 기무사측 반응은.
- 피해자대책위 구성 경위에 대해 설명해 달라.
- 피해자대책위는 어떤 일을 할 계획인지.
- ‘뜨겁습니다’ 회원 등의 기무사 불법사찰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지.
- 민주노동당 당원들과 ‘뜨겁습니다’ 회원 등에 대한 사찰은 성격이 다른 것 같은데.
- ‘뜨겁습니다’ 사찰은 어떻게 봐야할지.
- 이에 대한 기무사쪽 반응이 나온 게 있나.
- 피해자대책위원장직을 맡았다. 쉽지 않을 텐데.
- 장기전이 예상되는 만큼 힘을 더 모아야 할 텐데.
- 당원들에게 하고픈 얘기가 있다면.
글= 김동원 기자 dwkim@kdlpnews.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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