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씨에게. 인사는 줄이겠습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을 듣고 싶습니다.
오늘은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지 30년 되는 날입니다. 당신도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겠지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나처럼 평범하게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죠. 먼저,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만 기념하면 좋겠지만 끔찍한 일을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되기 때문이죠. 둘째,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백담사도 가고, 감옥에도 잡혀 들어가면서 어느 정도 심판을 받았죠. 당신은 이러한 처벌이 부당하다고 여기겠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당신 생각만 하면 이를 가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처벌이 합당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당신은 저지른 죄만큼 대가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게 있어요. 바로, 당신이 진짜로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신의 가슴 안 깊숙이 그 이름 남아있겠죠? 80년 5월의 광주! 당신이 권력을 잡기 위해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광주의 진상을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처벌도 하고 보상도 했다지만 정작 누가 총을 쏘라고 명령을 내렸고 어떤 계통을 거쳐 그런 명령이 내려갔는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는 것이죠.
광주시민들에게 곤봉을 휘두르는 공수부대. @518기념재단
당신은 광주의 진상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고백해야 합니다!
당신이 고백해야 합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이대로 당신이 죽게 되면, 역사는 당신을 반란수괴라고 가르칠 겁니다. 또한 뻔뻔한 인물이라고 사람들은 당신을 떠올릴 겁니다. 광주를 짓밟고 세워진 5공화국은 당신과 함께 한국역사의 부끄러움으로 남을 겁니다. 당신이 입을 열지 않고 무덤으로 간다면 사람들은 당신의 무덤에 침을 뱉을 겁니다.
또 하나, 당신이 만든 허깨비를 거두어주었으면 합니다. 당신의 군사반란은 주먹으로 한탕 할 수 있다는 환상을 한국에 심어놓았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신의 가족들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당신의 세 아들은 어느 누구보다 잘 살고 있지요. 지금처럼 잘 먹고 잘살기를 원하겠지만 당신이 퍼뜨린 일그러진 망상은 당신 자식의 부하들에게 미칠 수 있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누가 당신자식 밑에서 ‘반란’을 저지를지 어찌 알겠습니까?
오래 사셔서 잘 아시겠지만 사건들은 끝없이 물고 물립니다. 당신이 뿌린 씨앗들은 다시 당신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죠. 당신 혼자 짊어지지 못하는 업보는 당신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갑니다. 피해자들이 응어리진 한을 끌어안고 살아간다면, 당신에게서 덕 본 사람들 역시 행복할 수 없는 게 세상이치입니다. 당연히 복수를 품게 되고, 피의 악순환은 이어집니다. 부디, 멀리 바라보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전두환씨, 당신이 잡혀 들어가던 날이 떠오릅니다. 14년 전 이맘때였죠. 요즘에야 죄 없는 사람도 무조건 잡아가두는 검찰이지만 그때만 해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내세우며 당신을 조사하지 않으려 했죠. 손발이 오그라드는 주장에 국민들이 노여워하며 빗발치게 압박하자 검찰은 마지못해 소환장을 발부하였죠. 하지만 당신은 1995년 12월 2일, 집 앞 골목에서 ‘골목 성명’을 내며 버텼습니다.
“만일 제가 국가의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이러한 내란세력과 야합해온 김영삼 대통령 자신도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말이었지만, 가만 살펴보면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당신은 군사반란을 일으켜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범죄자이고,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심에 내란세력과 야합한 김영삼씨도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당신 말이 옳습니다. 당신은 범죄자이고, 범죄 집단과 손잡은 김영삼씨도 책임을 지는 게 순리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중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병문안온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한 시민이 '학살자'라고 외치자, 전 전 대통령이 얼떨결에 손을 들어 답례를 하려다 굳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요즘 힘들게 산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법원에 나와 29만원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가난하죠. 정확한 금액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1995년 기준으로 1조원 가까운 돈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당시에 씀씀이가 헤픈 걸로 유명했는데, 그렇게 쓰고 남은 돈이 저 정도였다니 도대체 얼마나 큰돈을 만졌는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당신은 어느새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진심으로 사죄하세요! 당신 손에 묻어있는 피를 닦고 가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당신은 또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말 돈 없는 것이 아니라 추징금 2,205억원을 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니까요.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이 극빈자로 몰락한 것에 안쓰러움을 느끼기보단 분노가 솟구칩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차마 창피해서 그런 말도 못할 텐데, 어찌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슬픔을 자아내네요.
지금도 당신은 왕처럼 다니고 있습니다. 나들이를 할 때는 경찰이 교통 통제를 해주고, 부인과 골프를 치고는 기분 좋다고 수백 만 원 짜리 기념식수를 하기도 하며, 골프장에 갈 때는 사람들을 몰고 다니고 있죠. 해외여행도 자주 한다고 들었습니다. 거기다 경남합천에 있는 ‘새천년 생명의 숲’은 당신의 호를 따 ‘일해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영향력이 한국 곳곳에 남아있군요.
이렇게 힘이 남았을 때, ‘구국의 결단’을 내리길 바랍니다. 당신이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죄해야 합니다. 헝클어지고 잘못된 세계관이 한국사회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 당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군사정권 동안 사람들의 정신이 많이 부서진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 당신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지난 2008년 5월 17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제28주년 추모제'에 참석했던 한 유가족이 먼저 간 아들의 묘 앞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다. @연합뉴스 형민우
당신의 고백은 당신을 처벌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탕으로 떨어진 당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작업입니다. 그와 함께 한국의 전통을 세우는 것이지요.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본이 될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피울음 흘리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당신이 진심으로 사죄한다면 그분들도 당신을 용서할 겁니다.
세월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앞으로만 휘영청 잘 가네요. 빠르게 변해간 한국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요? 당신을 역사의 큰 죄인이자 나라의 범죄자가 아닌 역사 앞에 고개를 숙이고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손에 묻어있는 피를 닦고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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