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기 신도시들.. 슬럼화 되기 전에 무너지겠네요

YOROKOBI 2009. 12. 19. 20:22
<중앙일보 : 2000. 07. 03.>

▲ ○○신도시의 한 아파트. 1991년 1차 조사결과 염분이 기준치 이상 포함된 아파트.

  일정량 이상의 소금기가 든 콘크리트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뼈대 역할을 하는 내부 철근이 녹슬기 시작해 압축강도가 떨어진다는 실험결과가 나와 80년대 말부터 바닷모래(海砂)를 대량 사용해 건설한 5대 신도시의 아파트에 대한 정밀 진단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최근 입수한 건설교통부 산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해사 사용시 염화물이 콘크리트 내구성에 미치는 영향' 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KS 기준 허용치 이상의 염분이 포함된 콘크리트는 10년이 지나면 모두 내부 철근이 녹슬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10여년 전 바닷모래를 많이 섞어 지은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등을 대상으로 염분 함유량과 철근 부식 여부에 대한 점검이 있어야 하며, 건축용 바닷모래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신도시 아파트 중 1991년 대한건축학회 조사 때 대상 아파트의 34% 가량이 기준치 이상의 염분을 함유한 것으로 드러났었다.

  전문가들은 이들 아파트에 염분이 들어 있더라도 당장 안전이 위협받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 당국과 자치단체가 정기적인 점검과 적절한 보수.보강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염해(鹽害) 실험 결과 〓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83년부터 염분이 여러 비율로 배합된 철근콘크리트 36종을 일반 아파트와 똑같은 조건에서 관리하면서 실험했다.

  그 결과 KS 기준 허용치인 0.04%(콘크리트 ㎥당 염분 0.3㎏) 이상의 염분이 든 경우는 10년이 지나면 모두 철근이 부식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염분이 기준치의 25%인 0.01%만 들어있어도 10년 후 일부 철근에서 부식이 진행됐다.

  철근 부식이 시작되면 시간이 갈수록 철근 부피가 2.5배까지 팽창, 콘크리트와 분리되면서 균열을 만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철근이 공기에 노출되고 물이 스며들면서 부식이 가속돼 전체 건축물의 수명과 안전에 영향을 주게 된다.

  건설기술연구원 김성욱 박사는 "현재로선 염분 콘크리트가 부식된다는 결과를 얻은 것뿐" 이라며 "2013년까지 실험을 계속해 염분이 건축물의 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상세히 규명하겠다" 고 밝혔다.

  ◇ 신도시 아파트 〓 대한건축학회는 91년 5대 신도시 아파트 6백90개동의 염분 함유량을 조사했다. 당시 기준인 염분 농도 0.04%를 넘는 아파트가 전체의 34.3%인 2백37개동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냈다.

  염분 농도를 0.01~0.04%로 확대할 경우 전체의 절반 정도가 해당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시 건축학회는 조사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레미콘 KS 허용 기준치를 무시하고 콘크리트 구조물 한계 허용량인 미국 기준 0.12% 이상의 아파트 19개동에 대해서만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발표했다.

  건축학회는 이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 신도시 아파트 1천2백21개동에 대해 2차 조사를 실시, 41개동만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발표했다.

  1차 조사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조사에서 염분 함유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자 파장을 우려해 우리보다 느슨한 미국 기준을 적용했다" 고 밝혔다.

  대구대 정재동 교수는 "바닷모래를 사용한 아파트는 5~10년 단위로 철근 부식 여부를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며 "10년이 지난 신도시 아파트에 대한 점검을 미뤄서는 안된다" 고 지적했다.

  ◇ 높아지는 해사 의존도 〓 골재 부족으로 인해 90년대 이후 국내 건설업계의 바닷모래 사용은 날로 많아지고 있다.

  전체 모래 사용량 중 바닷모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93년에는 25.6%였으나 올해는 47.4%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충남대 산업기술연구소가 98년 전국의 아파트 85개동에 대한 염분 함유량 실태를 조사했을 때 10년 이상된 아파트보다 5~10년된 아파트에 염분이 더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염해란… >

  흔히 '콘크리트 구조물의 소금 피해' 하면 백화(白花) 현상을 떠올린다.

  균열이 많은 구조물에 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소금기나 이산화탄소가 시멘트 성분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외부로 유출되는 것이다.

  그만큼 콘크리트 강도가 크게 저하돼 있다는 신호다. 아파트에서도 가끔 나타나지만 염화칼슘을 많이 뿌린 대도시 고가도로 등에서 많이 발견된다.

  백화현상 못지 않게 심각한 현상이 철근 부식이다. 콘크리트 내 철근 표면엔 부동태피막(不動態皮膜) 이라 부르는 내식성(耐蝕性) 피막이 있는데 이는 염화물 이온이 일정량 이상 침투하면 파괴된다.

  철에 녹이 발생하면 체적이 2.5배 정도 팽창하고 팽창압으로 콘크리트에 균열이 생긴다. 이 균열을 통해 염소이온.산소.수분이 쉽게 침입하고, 그 결과 부식이 가속되며 결국 콘크리트가 탈락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콘크리트 제조과정에서 염분이 많이 섞이면 콘크리트의 초기 강도(强度)는 일정기간 오히려 올라간다.

  건설기술연구원 실험에서도 KS 기준치인 염분량(0.04%) 이 콘크리트 제조과정에서 포함됐을 경우 압축강도가 1년 후 2백52㎏/㎠에서 5년 후엔 2백56㎏/㎠로 증가했다가 10년 후엔 227㎏/㎠로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염분량이 기준치 이상 포함된 구조물에 대해서는 통상의 강도 조사보다 내구성 조사가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건교부 입장 >

  "15층 이상 아파트는 법에 따라 3년마다 한번씩 정밀진단을 하고 있다. 그간의 진단 결과 아직까지 신도시 아파트 전체에 대해 별도의 정밀재진단을 할 필요를 느낄만큼 이상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

  건설교통부는 바닷모래를 많이 쓴 신도시 아파트에 대해 전면 재진단을 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건교부에 따르면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제정된 '시설물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 진단에 관한 지침' 에 따라 주요 기간시설물과 15층 이상 아파트는 ▶6개월마다 육안 중심의 '안전점검'을 하고 ▶3년마다 재료 분석 등 '정밀안전진단' 을 하게 된다는 것.

  즉, 아파트 내부 철근 구조의 상태까지 속속 들이 조사하지는 않지만 3년마다 콘크리트나 철근 등에 대해 기본적인 하중시험을 하고 있고 아직까지 특별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신도시에 대해 별도의 정밀재진단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건교부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진단 과정에서 콘크리트에 균열이 나타나는 등 부실징후가 있으면 즉각 조치하겠다" 면서 "다만 신뢰성이 검증되지 않은 건설기술연구원 연구결과를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또 1991년 대한건축학회가 신도시 아파트를 진단한 뒤 염분 허용치를 KS기준보다 느슨한 미국기준에 따라 적용, 19개동만 안전에 문제있다고 발표한 것은 축소 아니냐는 질문에 "전문가들이 내부토론 끝에 내린 결론으로 정부가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 고 대답했다.

  일본기준을 그대로 채택한 KS기준보다는 미국 기준이 세계적으로 더 많이 통용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건교부는 이와 함께 당시 문제가 된 19개동은 대대적인 보수.보강조치에 이어 특별준공검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 바닷모래 아파트 실태 >

▲ 음성직 수석전문위원.  

 콘크리트 구조물이 속병을 앓고 있다.

  철근 부식을 촉진하는 바닷모래로 지은 아파트,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에 방치된 교량들, 각종 공해물질에 노출된 지하철.터널.고가도로….

  공급 위주의 정책 속에서 소홀히해 온 안전문제, 무엇이 문제이고 대책은 무엇인지 5회에 걸쳐 싣는다.

  "염분이 들었다고 콘크리트 구조물이 당장 붕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은 지 10년쯤 지나면 염분에서 발생한 염소이온이 철근의 부동태피막을 파괴한다. 이후 철근은 녹이 슬면서(腐蝕) 팽창하고 콘크리트표면에 금(龜裂) 이 생긴다. 이 틈으로 물이 들어 오면 부식이 가속되고 철근이 콘크리트에서 분리된다(剝離) . 시간이 흐르면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지게 돼(剝落) 구조물의 내구성이 떨어지고 결국 수명도 짧아진다. "

  1995년 7월 신도시아파트의 염분 함유량을 조사한 전문가(대한건축학회 신도시아파트 평가단.단장 洪性穆 서울대 교수) 들의 기자회견 내용이다.

  당시 정부 당국도 국립건설시험소의 현장실험을 통해 "10년이면 염분이 콘크리트 내 철근을 부식시킨다" 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국이 취한 허술한 조사와 보강조치를 보면 주택 2백만호 건설 추진 차질과 주민들의 반발 등을 우려해 바닷모래 문제를 대충 덮고 넘어가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수원대 윤재환 교수는 "그때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지 말고 합리적으로 조사한 다음 제대로 조치했어야 했다" 고 말했다.

  ◇ 허술한 조사 〓 91년 1차 조사 때 건축학회는 조사대상 아파트 동(棟) 수의 3분의2인 6백90개동만을 표본으로 뽑아 1층 외벽 한 곳에서 시료를 채취해 염분량을 조사했다.

  그러나 같은 아파트에도 층마다 다른 레미콘을 쓰기 때문에 모든 층을 조사해야 한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어느 한 층이라도 염분이 많은 곳이 있으면 아파트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현장조사에 참여했던 단국대 정란 교수는 "용역비가 적어 어쩔 수 없었다" 고 해명했다.

  학회는 2차 조사 때는 조사방법을 바꿨다. 조사대상 아파트 모두에 대해 6곳에서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그러나 이 때도 1차 조사 때 빠졌던 아파트는 포함하지 않았다.

  ◇ 염분 함유량 실태 〓 본지가 입수한 건축학회 1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6백90개동 가운데 34.3%인 2백37개동의 염분 함량이 KS 기준치(0.04%)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동 신도시의 경우 조사대상의 74.3%가 염분 0.04%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산본은 54.8%, 평촌이 47.7%였다. 일산만이 0.04% 이상 아파트가 하나도 없었고 분당은 18%가 기준치를 초과했다.

  그러나 건축학회는 KS 기준 대신 미국 기준인 0.12%(콘크리트 ㎥당 0.9㎏) 를 적용해 19개동만 위험하다고 발표했다. 그나마도 건설업체의 반발이 일자 재조사를 거쳐 4개동만 보강토록 조치했다.

  이때 보강에서 빠진 중동 신시가지의 A아파트에 대해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아파트 뒤편엔 콘크리트 두께가 1㎜도 안됐고 녹슨 철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상부층에선 녹물이 흐를 정도로 열화(劣化) 현상이 뚜렷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너무 까다로운 KS기준이 아닌 선진국의 기준을 적용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 고 말했지만, 건설교통부는 96년 이 기준을 0.04%에서 0.02%로 오히려 강화했다.

  ◇ 어떻게 해야 하나 〓 우선 신도시 아파트의 콘크리트 상태가 어떤지 정밀진단을 실시해야 한다.

  대구대 정재동 교수는 "신도시 아파트 전체에 대한 재점검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우선 지난번 조사 때 문제가 드러난 곳에 대해 표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조사 확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고 제시했다.

  위험이 커지지 않은 현 단계에서 실태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해야지 더 늦어지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정교수는 경고했다.

  중앙대 정용수 교수는 "바닷모래를 쓴 아파트는 주기적으로 문제를 점검해야 한다"며 "문제를 조기 발견하기만 하면 요즘은 처리기술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추가 부식을 막을 수 있다" 고 말했다.

  1, 2차 조사를 총괄했던 정란 교수도 "염분 아파트는 10년이 고비다. 지금쯤 철근 부식 여부와 노후 정도 등을 재조사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음성직 전문위원 <eumsj@joongang.co.kr>

[도움말 주신 분]
▶단국대 정란 교수▶수원대 윤재환 교수▶대진대 김성수 교수▶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성욱 박사▶대구대 정재동 교수▶중앙대 정용수 교수▶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 이도헌 박사▶한국재난 연구원 윤영조 박사

[특별취재팀]
▶사회부〓음성직 수석전문위원, 하재식 기자
▶전국부〓김석기 차장, 김영훈 기자
▶경제부〓이재훈 기자
▶산업부〓황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