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민주화의 봄,
당시 대학생이라면 관선제로 뽑힌 총학생회나 rotc 대학생이 아니면 데모는 누구나 참여하는 당연한 일상이였습니다. 난 글 좀 쓴다는 이유로 함석헌 선생님이 왔다가면 튀어나오는 자료를 참고하여 유인물을 만들었고 5.17전북대 모임을 통해 전라북도 전체로 5.18일 대단위로 유인물을 뿌리기로 약속 한 날, 장갑차가 학교 정문을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사정권이 완성되자 나서 공수부대에 착출되었습니다.
데모하던 학생들이 공수부대 생활이란 녹녹치 않했지요.(공수부대 창립이래 최초로 사병만 착출 200여명 공수교육) 훈련이란 공수기본 훈련과 특수전훈련 천리행군 해양침투훈련 틈만나면 땅파고 들어가 비트 만들고 전술훈련에서는 침대각목, 몽둥이, 군화발이 항상 날아다녔습니다. 지금도 정강이에는 군화자국이 10여개가 보이는 군요. 가장 편한 얼차례가 원산폭격인데 대머리가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좌우 90도 회전이어도 너무 편해 잠이 오는데.... 나중에는 전우가 낙하산 사고로 저승에 가는 것도 그리 낮설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러던 중 상병정도 될 때야 비로소 금기시 되어온 광주사태 진실이 사수인 전중사를 통해 경계의 허물을 벗게 되었습니다. 여름철 그늘아래 10분 간 휴식중 ㅈ중사에게 슬그머니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광주사태시 00유방 도려낸 걸 본 적 있냐고...? 가만히 노려 보던 간부는 "너같으면 하겠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안심하며 고참의 고통스러운 광주사태 진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11여단은 강원도 오음리에 있었는데 지금 광주에 빨갱이 고정간첩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며 긴급히 폭동진압 지시를 받았다 했습니다. 문제는 부마사태 경우 몽둥이로 치면 다들 도망가기 바쁜데 광주는 오히려 더 덤벼든다는 것... 훗날 알고보니 광주는 온 시민이 경찰과 형님 동생하고 지내는 사이고 또한 시골동네 사람처럼 연대가 강한 곳에 방어전투훈련 자체가 없는 게릴라 공격부대를 파견한 자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투식량을 이틀만 먹어도 사지가 독성이 생기는 기분,(당시 해0제과에서 공급한 것인데 길가는 애들한데 쥐도 먹지않는 기피식량 1위) 전라도 아줌마들이 김밥을 주었는데 독극물이 들었다고 먹지말라는 지시에 의해 일주일 이상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때웠다는데 끔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다 일개 중대가 12명인데 24시간 경계근무는 쉴 틈을 주지 않고 일반군인은 헬기로 안전지대로 후퇴시키면서 공수부대에게는 쌀가마니 만큼 실탄만 내려놓고 가더라는 것... 그리고 도청에서 장갑차 후진으로 군인사망에 의한 최초 총성이었지, 의도적 공격은 아니였다는 것... 낫을 대나무에 달아 대항하는 광주시민군, 그렇게 달겨들지 말라고 해도 죽음으로 달겨들어 뇌사당한 안경낀 대학생... 오인전투, -저수지 사격, 버스총격, 농가 사격, 권총사격, 저격수사격 등 .....
당시공수부대 출신들 위에 관한 사건으로만 보면 지금도 김일성부대 악마로 보여질지 모르나 공수특전단에서 군생활 마치고 난 후 난 광주에 참여한 공수부대 출신들을 억울한 피해자로 이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나이 50이 넘어도 전투할 지역을 지정하여 북한 중간진(개마고원)에 2진으로 들어가라하면 당연히 들어갈 각오가 되었는 것처럼... 군 정신교육은 숨쉬는 공기와 같은 것... 그리고 공수부대가 해야 할 업무는 북과의 교전이지, 국민과 전투는 아닌 것 만큼... 당시 군지휘관 지시사항 "빨갱이 침투로 무정부 사태인 광주를 진압하라"는 세뇌교육아래 몽둥이와 총격을 할 수 없게 한 점이 문제이지... 죽음의 턱에 다다르게 할 정도로 힘들게 훈련받은 특수부대를 탓하는 것은.... 물론 죽음에 이르는 진압에는 그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지만...
광주혼령이 찢어 죽이고 싶는 자들이 아직도 수구세력에 존경을 받고 호위호식 한다는 것은 아직도 광주가 서럽게 슬픔에 잠겨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군요. 공수부대출신으로 부끄럽고 죄스런 생각이 듭니다 .
광주시민 여러분!
제가 미약하나마 5.18을기리며 눈물로 사죄합니다.
이렇게나마 공수부대를 변명할 수 밖에 없는 제가 어떤 때는 슬퍼 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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