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6·15선언 11돌… 남북 ‘당사자 주도’ 대원칙 훼손

YOROKOBI 2011. 6. 15. 05:52

최근까지 대치·갈등… 경협 빈틈은 중국·서방이 차지

'당사자 주도(자주)'라는 남북관계의 대원칙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뒤 발표한 '6·15 공동선언' 11주년에 접하는 초라한 성적표다. 남측이 빠진 경제협력의 빈자리는 중국 등이 빠르게 메우고 있다.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4일 일본을 방문해 기존 남북대화→북·미대화→6자회담으로 이어지는 3단계 대화 수순에 대해 협의했다. 오는 24일에는 김성환 외교부 장관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일련의 움직임은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천안함 사과가 없이는 6자회담 재개를 최대한 늦춰보겠다는 계산된 행동으로 해석된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1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리위안차오 중국 공산당 조직부장에게 "선혈로 응결된 북한과 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대대로 전수해가자"고 강조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지난달 20~27일 김 위원장의 방중과 후진타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이후 북·중협력을 부쩍 강화하는 차원이다. 남북이 '정상회담 비밀접촉 폭로'의 후폭에 휩싸여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북·중 대 한·미·일 구도의 한반도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북·중 협력과 한·미동맹 강화는 "외세에 의존하거나 간섭 없이"(1974년 7·4남북공동성명),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6·15 공동선언) 발전시키기로 한 남북관계의 대전제가 훼손됐고, 주도권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남북 갈등으로 커진 빈자리는 중국과 서방이 서서히 채우는 중이다. 북·중이 지난 8일, 9일 황금평과 라선지대 개발 착공식을 가진 게 대표적이다. 라진항 1·3호 부두 사용권을 중국과 러시아가 장기임차한 데 이어 2호 부두마저 유럽연합(EU) 회원국에 임대됐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남북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화채널은 인도적 지원을 매개로 한 적십자회담 정도다. 그러나 남측은 여기에도 '천안함 침몰 사건'의 책임 인정과 사과라는 전제조건을 달아놓았다. 비밀접촉 폭로에서 드러났듯 북측 입장도 단호해 낮은 수준의 남북대화마저 쉽잖은 게 현실이다.

결국 '남북대화 우선'이라는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현실적인 목표로 겉돌고 한·미, 북·중 공조만 깊어지는 형국이다. 핵을 앞세워 완강한 북측 앞에 '원칙 있는 남북관계를 지킨 정권'으로 자만할지, '갈등과 충돌의 역사'로 더 기록될지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미·중이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하고,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이 임박해 우리 정부가 버티기는 쉽잖다"며 "유연성을 발휘해 민간의 대북지원을 대폭 승인하는 등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게 남북관계 복원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