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자식이 명문학교에 입학해서 그 학교를 졸업하고 또한 그렇게 닦아진 길을 기반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성공 하는것은 세상 모든 부모들의 로망이자 희망사항일 것이다. 이런 부모들의 로망이 생각이나 희망을 넘어서서 직접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부모도 존재하고 있고, 그런 부모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아주 비양심적인 교육기관도 존재하고 있다. 어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이렇게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이용해서 아이들과 부모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교육기관이라 하기 너무 어폐가 심한 이상한 곳을 다루었었다.
부모의 직업과 그 아이의 잠재력과는 무슨 관계일까?
어떤 아이가 이 명문학교에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지원을 하고,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6년이란 시간을 어느 한군데 흠잡지 못할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단 한군데 '추천서' 점수 30점 만점에 5점으로 서류에서 떨어지고 다른 아이가 그 학교에 합격을 했다고 한다. 그 점수표를 들고 다니며 그 학교에 학생을 입학시킨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 그 점수를 보여줬지만 다들 반응은 이럴수가 있다니... 다들 놀랍다. 라는 반응이었다. 추천서를 제외하곤 어느 한군데 흠잡을곳 없는 아이가 왜 추천서 점수 30점 만점에 5점으로 거의 낙제점을 받아 서류심사에서 탈락을 하게 된걸까? 정답을 찾는 기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부모님을 따라 미국 프랑스 및 영국 일주를 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 성형외과의사인 아빠와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적인 과학자의 꿈을.....
● 어린시절부터 판사인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아 지금도 법 공부를 별도로 하고 있을 정도로 열의가.....
● 대기업 사장의 아들답지 않은 겸손함과 유연함이 귀감이되며....
○ 학급에서는 멘토로 활동하며, 학습이 어려운 친구들의 학습활동을 열심히 도와주며 <중략> 지원자는 1학기 전교어린이 회장 및 학급 회장을 맡으며...
위 박스 안에서 까만 동그라미의 경우엔 이 비경제적 사배자의 루트를 이용해 합격한 학생들의 추천서 이고, 하얀 동그라미는 비경제적 사배자의 루트를 이용해 그 학교의 서류심사에서 탈락한 아이의 추천서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나는 저 내용들을 가만히 곱씹어 보며 의문이 하나 생겻다. 그 부모의 직업과 그 아이의 잠재력과는 도대체 무슨 관계인걸까?
부모의 직업으로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재단 이사장의 입김 때문이라고 한다. 채점을 하는 심사위원들에게 부모가 전문직이라 뭔가 학교에 물질적인 도움을 줄거같은 부모의 아이들의 명단을 미리 쪽지로 건네고, 그 명단에 올라 와있는 아이들의 점수는 퍼주기식으로 준다고 했다. 그래도 점수가 되지 않을 경우엔 저 경우의 처럼, 부모가 전문직이 아니어서 그다지 학교에 물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거 같은 다른 아이의 점수를 깎아 부정입학을 시키는 방식.
한마디로 평범한 집안의 아이는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대낮에 맨발로 자갈밭을 500미터를 달리라고 하고서는, 부모가 사회의 권력계층, 혹은 전문직 계통인 아이의 경우엔 100미터만 달리라고 정해두고 그것도 미리 50미터 앞에서 시동걸어 놓은 자가용에 태워서 출발 총이 탕 하고 울리면 바로 그냥 가는 방식인거다.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추첨식으로 결정되는 이 학교의 입학제도, 그렇게 추첨으로 입학한 평범한 집안의 아이들에겐 온갖 꼬투리를 잡아 퇴학을 시키고는 그렇게 빈자리를 전문직을 가진 다른 학부모에게 몰래 귀뜸해 매관매직식으로 갖다 파는 비도덕적, 비윤리적인 상업행위는 어떠한 핑계로도 감히 용서가 안되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또한 이런곳이 어떻게 그 어린 아이들에게 정의와 도덕을 가르치며, 그리고 사회에 한데 어울려 살수 있는 '인격체' 를 빚어내는 학교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그 아이의 이름은 '사배자'

그 아이가 학교에서 불리던 이름은 '사배자' 였다고 한다. 풀어서 쓰면 사회적 배려 대상자 라는 뜻이고, 처음 이 학교가 만들어질 당시에 단 0.1%의 아이들에게만 허락된 수천만원짜리 교육으로 인한 형평성 논란이 일어나자 그 학교에선 사회적으로 배려를 받아야 하는 학생들을 일정 비율로 선발해서 교육시키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학교측에선 사배자를 뽑을때의 두가지 기준은 경제적 배려 대상자와,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 두가지이다.
경제적 배려 대상자는 가난한 집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똘똘하게 공부 잘하는 학생이고,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는 홀어머니나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있거나 국가유공자 자녀를 선발해서 뽑겠다는건데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의 루트로 이혼한 아버지 아래서 자라고 있다는 이유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입학해 논란을 불러 일으켯던 적이 있었다.
저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문제였다. 그아이가 학교에서 불리우던 이름은 이름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그 아이를 부를땐 '사배자' 라고 불렀다고 한다. 밥한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점심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쪼그려 있어야 했고. 수업시간에 발표를 할려고 치면 영어로 발표를 하는데 그걸 듣고 있으면 자신들의 '귀가 썩는다.' 라는 조롱을 받아야 했다.
이것뿐 아니라 몇십만원짜리 펜을 가지고 다니는 여유로운집 학생에 비해 오백원짜리 펜을 들고 다녀야 하는 가난한집 아이. 비교적 여유로운 가정에서 그 학교로 입학한 경우엔 교복을 체격이 자라날때마다 바꿀테지만 형편이 좋지 못한 가정의 학생은 3년을 입어야 하니 큰 옷으로 사야 했고 큰 옷으로 사다보니 볼품이 안나, 정말 사소한 것에서 부터 '다르다' 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 사이에서 배척당해야 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시달리다 부모는 극단의 방법을 쓴다. 봉투에 '아이 밥좀 먹게 해주세요.' '아이들과 어울리게 해주세요.' 라는 말을 써넣고 선생님에게 상납하게 된다. 그것도 봉투를 챙겨 줄때만 이고 다시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그런 상황들이 되풀이 되고, 그렇게 그 아이의 부모는 그 선생에게 총 250만원의 촌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아이가 견디다 견디다 못해 전학을 결심할때 학교에서는 그 아이를 말리며 아주 비상식적인 말을 했단다. '교육청에서 감사 나와요. 이런 애들 머릿수 맞춰야 해요. 스트레스를 받아도 참아라, 이런 좋은 환경에 와서 공부할 수 있는것도 다행으로 알아라' 학교에서 이야기 하는 이런 애들 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태어날때부터 금숫가락 물고 태어는 0.1%의 아이와는 달리 부모가 평범, 혹은 가난해 0.1%의 아이들처럼 부모가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이용해 그 아이의 앞길을 닦아 주지 못하는 아이? 아니면, 학교측에 있어선 '빌붙는다.' 정도의 느낌을 주는 아이? 도대체 어떤 뜻으로 저런 말을 하게 된걸까?
또한, 이런데 다니는것도 감지덕지 하면서 고마워 하지는 못할망정 우리가 이런식으로 베풀어 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감히 니가 이런식으로 일을 꼬이게 만들어? 더이상 학교에 폐끼치지 말고 입닥치고 다녀라 라는 식의 저 스트레스 받아도 참으라는 말이 왜 저렇게 분노스러운건가. 부모의 직업이 전문직, 혹은 특권층이 아닌 이상 학생을 소중한 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인재로 보는게 아닌 학교의 걸림돌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이곳이 어떻게 교육기관이라 이야기 할수 있겠는가.
저런곳이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걸까?
그 언젠가 초등학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안에서도 우리 집은 집이 몇평 몇평 이야기 하고 우리 아빠차는 뭐, 우리 엄마차는 뭐 따박따박 이야기 하며 무리를 형성하는 것들도 보였다. 어느 곳에서나 있듯 조금 사정이 안좋은 아이들도 존재하고 있었고, 그렇게 부자 무리와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놀고자 하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있었는데, 그 부자무리의 아이들은 가난한 집 아이들과 뭔가의 교류를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였다.
'같이 놀자, 왜 안놀려고 그래.' 이야기 하니 '가난한 병이 옮을까봐 못놀겠다.' 라는 그 부자무리의 우두머리 쯤으로 보이는 한 아이의 말을 듣고 '가난한 친구와 논다고 해서 가난한 병이 옮는건 아니에요.' 라는 답변을 했지만,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저 어린 아이의 입에서 '가난한 병' 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것도 아연실색할 지경이지만, 저렇게 무리를 갈라내 특별화, 차별화 된 교육을 하겠다는 명목으로 가난한집 아이와 부잣집아이의 구분선을 명확하게 짓는 저런 곳의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학교는 그래 수학 영어 사회 배우러 가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우선해서 학교라는 그 안에서 또다른 사회를 만들어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고, 또한 너와 나는 다르지 않고 같다는 평등의식과 그리고 앞서나가는 아이는 뒤에 걸어가는 아이와 함께 걸어나갈수 있는 인격을 빚어주고, 이 사회를 함께 걸어나갈수 있는 인격체를 빚어 나가는 공간이라 생각하는 나로서는 저런 곳의 존재이유를 정말 모를지경이다.
언제부턴가 그 아이를 판단짓는 기준이 인격이나 인성이 아닌, 국영수사과의 성적과 그리고 최근에 추가된 '부모의 직업' 이라는 사실이 우려스럽기 그지 없다. 언젠간 나도 한아이의 학부모가 되서 그 아이의 인격을 다듬어 줄수 있는 학교에 보내야 할때, 나의 직업이 그리고 아이 아버지의 직업이 그렇게 전문직, 혹은 사회의 명망을 받는 직업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가 그속에서 차별대우를 받거나 혹은 저런 말도 안되는 경우를 겪어야 한다면 그건 정말 슬픈일일거 같다.
아이를 아이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부자와 가난한집 아이들을 나누고 또한 그렇게 무리를 만들어서 그 아이의 부모의 직업이나 재력으로 아이를 판단하고 가늠하는 이잣대는 이 아이가 자라나 사회의 정상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국영수사과 문제만 잘 풀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문제풀기 로봇으로 만들어내는 이상한 교육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