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선교사들의 선교 특징과 그 속에서 얻는 차세대 선교 제안 정호상
연해주에는 다른 러시아 지역보다 늦게 개방이 되어 1991년부터 한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현재 선교사 협의회에만 40여 가정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선교의 위기는 1997년 새 종교법 발효와 몇 번에 걸쳐 시행된 비자의 제한을 들 수 있다. 물론 연해주를 포함한 극동지역은 러시아 정교회보다 개신교회 법인이 더 많은 곳으로도 러시아 정부가 인식하고 있어, 러시아 정교회의 개신교가 이단이라는 정죄와 러시아인들의 편견 외에도 정부의 견제도 심하게 받아 온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러시아의 여타 다른 지역과 달리 연해주의 한인 선교사들은 꾸준히 늘었고, 현재 비자법이 변경되어 선교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이때도 연해주 선교사들은 별다른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는 이유를 찾아보고, 앞으로의 선교 방침을 찾아 보려한다.
1. 연해주의 개황
연해주란 러시아어로 쁘리모르스키 끄라이라 부르는 지역인데, 한반도와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10여킬로미터 국경을 접한 러시아의 변방지역으로 한반도보다 조금 좁은 지역에 약 220만이 살고 있으며, 러시아의 동방 진출 기지로 극동함대 사령부와 함께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시작되는 군사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하지만 연해주는 러시아의 극동지역으로 수도 모스크바에서 8000킬로미터 이산 떨어진 변방으로 그 주위에 하바롭스크 주, 사할린 주, 캄차트까 주 등이 있다. 이 연해주는 이 지역이 러시아에 합방된 1860년대부터 한국과 많은 교류를 한 지역으로 항일 무력 항쟁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으며, 1909년 한국 장로교회는 최초로 외국에 한인 선교사를 파송한 지역이기도 한 곳이다. 이 연해주에 1920년대에는 감리교회와 장로교회가 각각 연회와 노회를 조직한 지역이다.
2. 변화된 비자법 아래서 당황하는 선교사들
2007년 10월 러시아 정부는 비자법을 변경하여, 한국 선교사들이 대부분 소지하고 있는 상용비자와 인문비자의 1년 기한 중 최장 6개월만 러시아 내에 체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원칙적으로는 3개월 러시아 채류에 3개월은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법이다. 이 법의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선교사외에도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도 별 대처 방법이 없이 마냥 기다리고만 있고, 우리 한국 대사관에서도 여러 방법을 모색하지만 아직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사이 변경된 비자 법에 의해 3개월을 러시아에서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앞으로 어떤 비자를 받아야 할지 걱정이 많다. 이러한 사실을 한국에서도 듣고 매우 걱정하고 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치솟는 부동산 임대료, 생활비의 고공행진, 미진한 선교 성과로 인해 선교의 계속성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각 교회에 이번 비자법의 변경은 선교지를 바꾸어야 한다는 섣부른 결단을 하려는 성급함이 있다.
그런데 유독 연해주의 선교사들은 너무 조용하다. 별 바뀐 것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연해주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40 여 가정 중 이미 두 가정이 러시아 시민권을 받았고, 줄잡아 30가정은 영주권(외국인 거주권)을 소지 하고 있으며, 그 외 10여 가정은 3년 기한의 임시 거주증을 소유하고 있고, 단지 2-3 선교 가정 단위만 3개월 마다 오고 가야하는 현실인데, 이들은 벌써 비자 법이 발효되기 전부터 3개월의 단기 비자 매년 3-4회 해외로 오고 갔기에 별 달라진 상황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연해주에서는 비자법이 바뀌어 선교지 상황이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3. 차이를 가져오게 된 원인들
1) 연해주 선교사들은 선교 시작을 교회의 법인 설립으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이미 연해주에서는 1991년부터 지금까지 줄 곳 지켜져 온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연해주에서는 법인 등록을 하지 않고는 교회를 시작할 수 없다. 적은 규모의 성경 공부 모임조차 외사과의 제지를 받는 상황이다 보니, 법인 설립 없이 하는 선교 활동은 감히 생각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외교관 신분으로 집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사람은 주 정부와 연방 정부로부터 심각한 항의를 받았고, 현지 교회가 운영하던 비인가 신학교는 철퇴를 맞기도 하였다. 구원파(러시아 정부는 장로교나 감리교회 침례교회, 순복음 교회를 구원파와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에서 파송된 선교사는 교회 법인 인가 없이 성경공부와 집회를 하다가 발각되어 얼마 전 추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연해주에 있는 한국 선교사들의 교회는 다 법인 등록이 되어 있고, 그 외에도 두 개의 신학교(주간, 야간)가 법인인가를 받았고, 2-3개의 교회 연합체(총회. 싸유즈)가 등록 되어 있다.
그 중에서 박용호, 송상천, 정호상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들은 종교 법인 재 등록을 요구하는 새 종교법(1998년 발효)대로 등록을 한 후, 이 교회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연해주 장로교회 싸유즈(현재 박광배 목사가 의장으로 있다)는 연해주에서 개혁교회가 존재하는 큰 이유가 되었다. 이 장로교회 싸유즈는 블라디보스톡 외의 연해주 지방의 교회들은 15년 존재 증명을 득하지 못하여 교회 등록을 할 수 없었을 때 이 싸유즈에 소속된 교회로 하여 새 종교법 상에 법인 설립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미 존재하는 교회의 법인 등록을 도왔고, 새로 시작하는 교회의 설립의 기반을 제공하였다.
현재 연해주 교회들의 법인 소속 현황을 보면 약 25개 이상의 교파가 다른 교회가 싸유즈에 속해 있고, 대여섯 교회는 개별 법인으로 되어 있으며, 감리교회는 별도 싸유즈를 설립되어 3-4교회가 속해 있고, 그 외에 사도행전 교회는 자기가 개척한 교회를 중심으로 다른 싸유즈를 결성하고 있다. 또 이러한 싸유즈에 들지 못한 교회들은 러시아 현지 교회의 도움으로 현지 교회의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려 하지만 이렇게 법인 설립이 활발하게 될 수 있어서 교회 존립의 기반이 된 것은 한인 선교사들 간의 협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한인 선교사 간의 유대 뿐 만 아니라, 러시아 교회와의 협력은 연해주의 자랑이기도 하다.
2) 또 하나는 영주권이나 임시 거주증을 활발하게 받은 것이 여타 지역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것은 연해주에만 국한된 것이라 보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영주권은 러시아 연방법에도 분명히 나와 있는 외국인 이 러시아 영토에서 사는 한 방법이기 하며, 중앙 아시아에서 러시아로 온 사람들이 러시아 공민증을 받기 전 단계로 영주권을 다 받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러시아에 사는 것은 러시아 법에 의해 단기 방문 할 수 있는 비자(보통 수일에서 1년 미만), 임시 거주 증명(3년), 영주권(5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해주의 한인 선교사들은 영주권이 약 2/3, 임시거주증이 1/3이고, 최근에 한명이 임시 거주 증명 신청을 완료 했다. 문제는 새로 오는 선교사가 정착하는 것이다. 임시 거주증까지만 된다면 거의 정착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순교자 김창식 선교사 기념 교회당(우수리스크 시)
3) 연해주의 선교사들은 대개 개인 집을 구입해서 살고 있다(한 두 가정은 세를 얻어 살고 있다). 주택 구입은 또 하나의 안정적인 러시아 선교를 위한 교두보가 되는데, 한국 교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개인 재산 불리기만 급급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 앞에 선교사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집을 구입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월세뿐인데, 10년의 월세만 모아도 넉넉한 집을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경제적이며, 또 하나, 장기간 거주 등록을 할 장소가 준비되는 것이다.
4) 연해주는 자체 교회당을 소유한 교회가 많다. 또 교회당을 건립한 교회들이 많은데, 나홋가 시에 2개 교회 빨찌산스크에 3개 교회, 아르쫌 시에 4-5개 교회, 우수리스크 시에 2개 교회, 블라디보스톡 시에 3-4개 교회, 스파스크 시에 1개 교회가 단독으로 교회용 건물을 건축하였다. 대부분 교회들은 건물이 있는 터를 사고, 산 옛 건물을 헐고 그 부지에 교회를 건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부지만을 교회 명의로 임대한 후 교회를 지어 불하 받으려는 하는 교회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너무 어려운 난관이 많아 옛 가옥을 구입하고. 그 부지 위에 건축하는 방법이 대세를 이룬다.
5) 연해주 지역은 한인 선교사간 협력이 다른 지역보다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연해주의 한인 선교사들은 초창기부터 한 조직체를 운영하려 공을 들인 결과 현재까지 단일한 협의회에 거의 모든 선교사들이 협력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해주 선교사 협의회는 명실상부한 연해주의 한인 선교사들의 총체적인 모임 기구이며, 대부분의 일들이 이 기구를 통해 논의되어지고 실행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교파는 매우 다양한데, 여러 교파의 장로교회가 가장 많고, 감리교회, 침례교회, 순복음 교회, 성결교회, 구세군이 참여하고 있으며, 장로교와 감리교회가 따로 싸유즈를 소유하고 있으나, 교단의 특색 있는 행사(목사 안수식 등) 외에는 모두 함께 연합하여 처리한다.
연해주 선교사 협의회에서는 신년 하례회와 함께 격월로 전체 회의를 교회를 돌아가며 모이고, 각 교회 청년들이 모여 2박 3일 기도하며 찬송하고 훈련을 받는 청소년 수련회와 한국 교민 전체가 참여하는 교민 체육대회, 선교사 가족들이 모여 선교지의 아픔을 서로 서로 보듬어 가며 힘을 얻는 가족 수련회, 각 교회 대항 찬양 페스티벌을 해마다 열고 있고 점점 더 열기를 더해 간다. 또 정부와 함께 구제 사업도 하며, 러시아 현지 복음 교회들과 연합으로 전도 집회나 복음교회 대회의 한국 측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연선협 회의 광경, 찬양페스티발, 체육대회, 복음교회 연맹
또 연합 사업의 일환으로 성공하고 있는 사례는 신학교 사역이다. 연해주 선교사들은 기숙사 생활하며 주간에 공부하는 블라디보스톡 장로회 신학교와, 야간에 출석하여 공부하는 감리교 신학교는 둘 다 공히 교수 요원들을 현지 선교사들로 대부분 공유하고 있다. 두 신학교는 장감 교파의 차이를 주입하기 보다는 공통점을 강의 하고 졸업 후 진로는 신학생을 보낸 교회의 교단 성격에 맞추도록 한다. 예를 들면 장로교 신학을 졸업하고 감리교회 목사가 된 이도 있다. 특히 장로회 신학교는 재정의 대부분을 새문안 교회가 담당을 하고, 운영을 연해주 선교사들에게 맡기도록 하여 선교사 연합을 이루는 중심체로 일을 담당하고 있다.
김명혁 목사와 함께 한 러시아 교역자 쎄미나
3. 선교 방향 - 연해주 지역을 통해 본 러시아 선교 방향
러시아는 외국 선교사들의 선교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 하고 있는 중 특히 2007년 비자법의 변경으로 인해 러시아에서의 선교가 더욱 어려워 졌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어려움을 이미 겪은 연해주의 경험을 살린다면 러시아 선교의 새로운 길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선교방향을 제안해 본다.
1) 러시아 법에 최대한 맞추는 선교를 하자. 러시아 법이 복음을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러시아 법을 무시하고 선교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지 국가의 법을 최대한 존중해야 우리가 러시아 영토 내에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한인 선교사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자. 선교사간의 협력은 어렵고 힘든 순간에 더욱 그 가치를 발휘한다. 적은 정보와 희미한 희망도 함께 의논하고 협력하면 나갈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협력은 나보다 남을 더 귀하게 여길 때 가능하다. 남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 남도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 그러면 모든 협력은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도 다른 선교사를 살려야 한다. 그러면 내가 죽음의 자리에 처하게 될 때, 다른 이들이 나를 돕기 위해 기꺼이 헌신할 것이다.
3) 러시아 현지 복음 교회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접촉하고 이들과 공동보조를 취함으로 러시아에 적응하자. 우리는 러시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한다. 그래서 우리는 러시아인을 세워 지도력을 위임하고, 교회를 설립한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해 이미 헌신된 일군들이 러시아 현지 교회 사역자들이다. 이들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그러나 가장 적절한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저들에게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가 강도가 아니라 저들과 한 형제임을 우리가 보여야 한다. 신실함을 보여야 하고 오랜 인내를 통해 러시아 복음 교회 목회자들의 마음을 열 수 있다. 조금만 인내를 갖고 다가가면 러시아 복음 교회는 우리를 향해 도움의 손을 내밀고 함께 복음 전선에서 협력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4) 러시아 정교회와 협력하여 선교하기를 시도해 볼 적기다. 지병으로 일찍 주님께로 간 한 러시아 목회자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정교회 이름으로 내가 복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올 텐데...” 러시아 사람들은 1000년의 역사에 대한 자존심으로 정교회를 사랑한다. 심지어 공산주의자였다 해도 정교회 교인이라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정교회 외에 모든 복음교회의 선교 기회를 막는 지금, 정교회에는 그만큼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말이다. 나의 출신 배경(교회)만 강조하다가 복음을 전할 기회를 영원히 포기할 수 있는가. 우리 한국 교회의 최초의 선교사 최관흘은 한국 교회의 비난을 감수하고도 러시아 정교회에서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국 교회의 일원임을 더 강조하기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로 강조하며 러시아 정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정교회의 시스템 속에서 정교회의 인지도를 힘입고, 교단이 아닌 복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러시아에서 크게 확장될 것이다. 이런 일이 각 개인 선교사가 정교회와 접촉을 시도하면서 선교 지도자들도 정교회 지도자들과 진지하게 의논해서 러시아 정교회도 힘을 얻고 주님이 우리에게 맡긴 사명도 완수할 수 있는 그 지점이 우리가 서야할 자리가 아닐까?
5. 결론
연해주 선교사들도 다른 지역처럼 갖가지 어려움이 있었고, 특히 비자 문제는 모든 선교사들을 괴롭힌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재의 안정적인 선교 기반을 이루었던 것은 선교사간의 연합과 협력과 함께 러시아 정부의 요구에 맞추어 적법하게 활동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비자법이 강화된 지금 러시아에서 외국인인 우리가 선교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 국법에 맞추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본다. 이 난제를 타개할 방법으로는 교회간의 연합과 더불어 러시아 정교회와 함께 사역을 해 나갈 수 있다면 하나님 나라가 크게 확장될 것으로 본다.
다음은 최근에 보내온 연해주 선교사 황성국 목사의 글이다.
지금 돌아보면 선교지에서의 그동안의 삶이
금번 겨울과 같은 혹한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사탄의 강한 공격를 받기도 했고
종교재판으로 추방당할 뻔도 했고
차량이 전소되기도 했으며
도둑은 수도 없이 맞았던 아픈 추억들이
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 되는 것이
선교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고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그것의 삼십배, 육십배, 백배로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끝까지 바라보지 않고 척박한 환경만 바라보고
너무 아파서 같이 때리다가 당했던
부끄러운 기억들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으로도 모자라서
바울처럼 감사하고 기뻐하기는 커녕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백성들을 원망하고
다들 도둑놈이라고 정죄하기도 했으며
주님께서 맡겨주신 선교지를 힘들다고 투덜거렸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선교지에서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과 수고를
이렇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동토의 선교지에서
조금이나마 주님의 위로를 느끼는
봄의 따뜻함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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