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중의 고전 '고문진보' 한글 세대 용 나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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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자격시험이 생시고, 대학입학시험은 물론 입사 시험에서도 고전과 한문은 물론 논술 비중이 커지는 가운데 우리나라 1세대 출판사인 을유문화사는 최근 ‘고문진보-전집·후집’을 나란히 펴내 “역시 을유문화사답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문진보’는 주나라 때부터 송나라 때에 이르는 고시·고문의 주옥편을 모아 엮은 책으로 예로부터 학문과 수행의 기초필수과목으로 인식돼 왔다. ‘고문진보’는 또한 동양적 사고와 정신 문화의 지평을 넓혀준 한문 문장 교과서로 평가받는다.
고문진보의 ‘고문(古文)’은 ‘옛날 글’, ‘진보(眞寶)’는 ‘참된 보배’라는 의미로, ‘고문진보’는 ‘옛날 글 가운데 참된 보물만 모아둔 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고문이라는 말은 본래 옛날 글이라는 뜻도 있지만,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요즈음 글’이라는 뜻을 가진 ‘금문(今文)’의 반대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때를 기준으로 옛날 글과 요즈음의 글을 나눌 수 있을까?
대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이전에 지어졌던 사서삼경이나 제자백가의 글들, 또는 전한(서한) 때 사마천이 지은 ‘사기’ 같은 책에 적힌 글을 고문이라고 하고, 후한(동한) 이후부터 위진 남북조, 수나라, 당나라 초기까지 문단에서 크게 유행하였던 변려문을 금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나라 중기 이후(중당) 나타난 한유, 유종원 같은 이른바 당송 팔대가들이 대구(對句)를 많이 사용하고 전고(典故)가 많으며 문장에 담는 내용보다 문장 형식의 꾸밈새에만 치중하는 변려문(금문)을 반대하고, 다시 고문을 모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들이 쓴 글을 다시 고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문이라는 말에는 옛날 글이라는 매우 넓은 범위의 뜻도 있지만, 대구나 수식에만 치우치지 않고 문장 안에 인생 또는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알맹이, 즉 옛 사람들이 생각하던 올바른 ‘도(道)’를 담은 산문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현재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고문진보’ 판본은 정본(鄭本)의 서문이 붙은 원나라 지정(至正) 26년(1366)의 것으로 “이 책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임정(林楨)이 주석과 교정을 가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명나라 홍치(弘治) 15년(1502) 청려재(靑藜齋)의 ‘중간고문진보’ 발문에는 이 책이 송나라 황견(黃堅)의 작품이라고 하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판본들이 있는데 그것은 ‘고문진보’가 처음 나온 이후 여러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주석을 첨가하기도 하고, 체제를 다소 바꾸기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본(異本)이 생겨나면서 편찬자의 이름 표기도 달라진 때문 같다. 대체로 중국과 일본에서는 원저자가 황견이라는 설이 강하고, 한국에서는 진력이라는 설이 많다.
전집과 후집이 각각 10권씩으로 엮어진 중국이나 일본에서 유행한 판본들과 다르게 우리 나라에서는 ‘상설고문진보대전’이 유행하였다. 이 책은 전집이 12권으로 엮어져 있고 산문만 수록한 후집 부분이 수록된 문장 편수도 훨씬 많고, 배열도 작품의 갈래[文類]가 아닌 저작 시대 순서에 따르고 있다.
제작 연대와 편자가 정확하지 않은 ‘고문진보’는 대개 중국 원나라 초기쯤 처음 편집되었고, 그 이후 여러 사람이 주석을 첨가하면서 재편집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편찬자가 된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후기, 조선 초기에 이미 몇 가지 판본이 수입되고 인쇄되어 널리 보급되었으며, 일본에는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과 같은 판본이 들어가기도 하였지만 내용이 조금 다른 ‘고문진보’가 보급되었다.
청나라 때부터 ‘고문사류찬’이나, ‘고문관지’ 같은 책이 유행하면서 중국에서는 ‘고문진보’가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렸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크게 유행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서(四書), 삼경(三經) 이외에 한문 문장 교과서로서 가장 많이 읽혀졌다.
고려 말 조선 초에 이미 목판본과 활자본 ‘고문진보’가 나왔고, 점필재 김종직이 쓴 이 책의 서문이나, 퇴계 이황의 ‘고문진보’에 실린 작품 비평 등을 그들의 문집 번역본에서 찾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한글로 언해 된 것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 한글로 문장의 뜻을 이해하기 편하게 토를 달아 놓은[懸吐] 책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점필재는 이미 당시에 이 책의 편자에 대한 추측이 구구하였는지, “‘고문진보’는 이미 세 차례나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하였고, 퇴계는 이 책은 “진력이 편찬하였다”고 하였다. 또 퇴계의 ‘언행록’에 “사람들은 시를 공부하기 위하여 ‘고문진보’를 보통 600번씩이나 읽으면서 암송을 하는데, 나도 몇백 번을 읽고 암송하게 되었고, 그 뒤로는 한결 시를 쉽게 지을 수 있었다”고 하는 내용이 있다.
옛 문인들의 필독서였던 이 책은 전국시대에서 남송(南宋)까지의 시문(詩文)을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글 세대에 맞게 새롭게 번역하였다. 임금에 대한 절개, 출세에 대한 지략, 인생의 의미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세월이 흘러도 녹슬지 않는 고전의 가치와 보물 같은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책은 단순히 문장 모음집이 아니다. 왜냐하면 민중과 사회의 제 현상에 대한 중국 옛 선현들의 사유의 편린을 함께 헤아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히 한글 세대를 위한 이 번역서는 한문 원문이 수록돼 있으며, 그 한자마다 한자음이 달려 있고, 한글 토씨까지 있어 한문에 낯선 문외한들에게도 열린 글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고문진보’는 크게 시를 모은 부분과 산문을 모은 부분으로 양분되는데, 앞의 시 선집을 전집, 뒤의 산문 선집을 후집이라고 부른다. 전집에는 권학문을 비롯하여 오언고풍 단편·오언고풍 장편·칠언고풍 단편·칠언고풍 장편 등의 10여 체 200여 편의 시가, 후집에는 사(辭)·부(賦)·설(說)·해(解)·서(序)·기(記)·잠(箴)·명(銘)·문(文)·송(頌)·전(傳)·비(碑)·변(辯)·표(表)·원(原)·논(論)·서(書)·의(議)·계(戒) 등 20여 체 130여 편의 문장이 수록되어 있다.
을유문유사가 낸 새 번역서의 전집에는 권학문·오언고풍 단편·오언고풍 장편·칠언고풍 단편·칠언고풍 장편·장단구·가류·행류·음류·인류·곡류·사류로 12체 24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권학문은 소년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권유하는 글이고, 그 다음의 시는 글자 수와 길이의 장단에 따라 오언시, 칠언시, 장편, 단편으로 구분하여 수록하고 있다. 장단구는 글자의 수가 많은 구절과 적은 구절이 뒤섞여 있으며 옛날 한나라 때의 민요풍의 노래 가사들을 모방하여 쓴 악부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전집의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 책은 시문 선집이기도 하지만 교훈서를 겸하고 있다.
학문을 권장하는 권학문이나 소식이나 백거이 등의 현실을 풍자한 사회시를 통해 시라는 것이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며 자연을 읊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파생되어진 사회적 산물임을 각인시키고 통치자의 잘못을 풍자를 통해 은근슬쩍 꼬집으면서 사회 변화와 인식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둘째, 고체시는 수록하면서 근체시는 배제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근체시가 가진 속성 때문이다.
근체시란 당나라 때 변려문의 영향으로 시에서 대구(對句)와 전고(典故)를 많이 사용하고 음율적인 요소(한 음절 안에서 소리의 높이에 변화가 없는 평성과 그렇지 못한 측성의 배열 규칙 같은 것)까지 엄격하게 규정한 율시(律詩: 규율, 음율이 엄격한 시) 같은 시를 말한다.
근체시나 고체시 모두 오언시와 칠언시가 있지만 ‘고문진보’에서는 고풍이라고 하여 고체시에 속하는 오언시와 칠언시만을 수록하고 있으며 그 다음에 나오는 장단구와 악부시 또한 모두 고체시에 속한다.
후집은 주로 당송 시대의 고문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 나온 산문과 운문이 결합된 사부(辭賦)체나, 대표적인 변려문 몇 편도 수록하여 놓았다. 그런대 여기서 잠시 ‘산문’이니 ‘운문’이니 하는 용어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원래 산문, 운문이라고 하던 말의 뜻과, 현대에 와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러한 말들의 뜻은 다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원래 한자 용어로 산문(散文)은 직역을 하면 ‘흩어진 글’이 되는데, 이 말은 시구나 변려문과 같이 문장의 길이[글자 수]가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지 못한 글이라는 뜻이다. 즉 긴 문장과 짧은 문장이 별 구애를 받지 않고 혼합되어 있는 글을 말한다. 그러나 요즘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산문이라는 개념은 시가(詩歌: 즉 운문)와 같이 줄[시행]을 자주 바꾸는 형식에 대비가 되는, 문장이 줄줄이 이어지는 ‘줄 글’을 말한다. 현대 한국의 문학 용어로는 ‘산문’에 대가 되는 개념이 ‘운문’(시가)이지만, 중국의 전통 문학용어로서의 ‘산문’에 대가 되는 용어로서는 ‘운문’보다는 오히려 변려문을 줄인 ‘변문’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이 경우에는 산문은 대구(對句)를 사용하지 않는 글, 변문은 대구를 사용하는 글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니 중국에서 원래 산문이라는 말은 문장의 길이가 일정하지도 않고, 대구도 사용하지 않는 글이라는 뜻이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현대적인 용어로서 산문이라고 하면 옛날의 산문과 변문, 나아가서는 옛날에 운문이라고 하던 것의 일부까지도 포함한다. 중국의 옛날 작품 중에는 시가가 아니지만 각운자를 다는 문류가 더러 있는데, 위에서 말한 사부(辭賦)류의 작품에도 각운자를 넣는 단락이 있을 수 있다. 애도문, 조문, 제문, 잠·명·송·찬 같은 류의 글에는 모두 전문(全文)에 각운자를 넣는 것이 제격이며, 산문(줄글) 형식으로 시작하여 쓴 글도 마지막 부분에 가서 “찬으로 이르기를(贊曰)”, “시로 이르기를(詩曰)”과 같은 말을 넣어 운문으로 끝내면서, 산문과 운문을 혼합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중국의 옛날 산문은 요즘 보는 것과 같은 순수한 산문이 아니라, 매우 시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는 산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이 중국 전통 산문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鄕뗍ㅑ?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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