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0년 말 광주민중혁명의 어수선한 국내 분위기를 뒤로하고 온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홀홀단신 미국으로 떠났다. 거기서 결혼도하고 귀여운 딸도 낳고 살다가 1994년 영구 귀국하여 국적을 회복했다. 나의 미국생활은 좌충우돌 고생도 많이했고 성공도 했으며 후회는 없다.
그중에서 나의 소중한 경험담을 이야기해 보려고한다. 나는 LA-> Boston-> Chicago를 거치며 미국의 Big 4 중에서 3곳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어가 서툰 교포자녀들을 대상으로하는 한글학교를 운영하면서 겪은 경험을 미국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알리고 유학생에게도 알려서 그 중요성을 강조해보려고한다.
나는 당시 대부분의 교포들이 그렇듯이 LA 근교에서 한인교회에 다녔다. 거기는 수 많은 교포들이 제각각 생업에 종사하며 바쁜생활을 영위하고 주일이면 교회에 모여 밥먹고 예배보며 지난 한주의 회포를 풀곤했다. 나는 학생들과 접촉하면서 의외로 한국말을 잘하지못해 부모와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목사님께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쳐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크게 기뻐하셨고 여러분들이 도와주셨다.
교재도 자체제작하기도하고 나중에는 한국에서 구입하게 되었다. 나는 30여명의 학생들중 의외로 어린 초등생들보다 중고생이 많은 것에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들은 어릴때는 몰라도 커가면서 유형 무형의 차별을 받으며 자라고 그럴때마다 자기가 미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헷갈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의 뿌리는 한국이며 미국은 자신의 생활터전이라는 말도 들었다.
나는 그래서 학생들에게 정체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고국을 떠나 사는 것이 힘든일이지만 그럴때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힘이 날거라는 말을 강조했다. 차츰 내말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나는 서툰영어로 그들에게서 영어를 배우고 그들은 내게서 한글을 배웠다.
당시 토요일과 일요일 2시간씩하는 수업에 대한 교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자식과 의사소통을 하게되었다며 무료봉사하는 나에대한 후원도 이어졌다. 멀리 샌디에고에서 차로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분도 계셨다. 나는 몇년전 TV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골프선수 위창수였다. 그가 내게 한글을 배우던 나이는 초등2학년? 그러나 그는 30 이 넘은 어른이 되어있었고 당시 골프채를 휘두르는 시늉을 하던 모습에서 한국의 정상급 선수로 성장해있었다.
또하나 자랑스런 당시 학생이있다. 그의 이름은 장성남. 지금 예일대 로스쿨을 나와 뉴욕의 거대 로펌에서 세계를 상대로 뛰고 있다. 그의 부모는 영어를 못해서 그가 미국에서 40명뿐인 로즈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전화를 받고도 알아듣지 못해서 학교장과의 통화에서 무조건 예스만을 남발하여 식사약속을 지키지 못한 에피소드가 있는 학생이다. 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아예 통채로 심청전을 외워버리던 것이 생각난다.
나는 그들이 나를 기억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어릴적 미국에서 누군가에게 한글을 배우던 것은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말라던 나의 말을 기억해 준다면 나로서는 고맙겠다.
나는 정든 LA를 떠나 미지의 Boston으로갔다. 거기서도 목사님께 제안하여 한글학교를 만들고 영광스럽게 뉴잉글랜드의 20여개 교회 한글학교 총 책임자가 되었다. 그때 나는 자원봉사하는 유학생이나 학생들이 대부분 아이비리그 소속인 것을 보고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다. 거기서는 나도 공부에 바쁘고 먹고사느라 바빠 곧 책임자를 다른 분에게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슴이 뿌듯하고 내가 그런일 을 하려고 미국에 가지 않았었나 하는 착각이 들기도한다.
오늘날 미국의 이민사회가 크게 성장하고 한인들이 정치세력화하여 미주 한인들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고, 보스톤에서 <요코이야기>책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나오고 미의회의 위안부결의안 통과에 적극나선 한인단체들을 보면서, 그때의 일이 한알의 밀알이되지 않았나 하는 나만의
공상과 자화자찬을 해본다.
한글교육은 가정내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져있는데 오늘날 미국 한인사회에는 어떤식의 정체성교육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 내가 미국에서 돌아온지 벌써 13년이 흘렀고 지금도 그런 한글교육이 이어지고있는지 궁금하기도하다.
부디 이글을 읽는 유학생이나 교포들이 있다면 자신이 속한 교회나 단체에 한글학교가 있는지 살펴보고 없다면 적극 나서서 행동해 봄이 어떤지 제안해 보고자한다. 유학생에게 한글학교는 유용한 영어를 배우는 장소가되고,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있고 미국에서 태어난 학생들에게는 한국인임을 깨닫는 보람있고 자랑스런 장소가 될 수도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사는 미국에서 우리 교포 자녀들에게는 미국이 먼저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다음 자신을 반겨주는 곳은 한국임을 깨닫게해주는 것도 멋진일이 아닌가?
미국에서도 요즘 영어이외의 Bilingual의 중요성이 강조되니 이중언어는 곧 돈이 아닌가? 내가 망서리는 학생들에게 써먹던 방법이기도하다. 조승희가 한국식 정체성과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는 한글학교 교육을 받았더라면 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내가 그사건을 보고 느낀점이었다.
미국에서 힘든일을 당해도 정체성을 잃지않고 자기 가족의 소중함과 상호도움이 있다면 못할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부디 교포들은 제말을 기억해주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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