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성도가 되는 길

YOROKOBI 2008. 3. 21. 21:42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성도가 되는 길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사람을 기뻐하실까를 생각할 때,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섬기며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나아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구세주로 영접하기 전에 자신의 상태라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암매한 상태였는가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죄씻음을 받게 된 사실을 깨달은 사람일수록 크게 가슴에 와닿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떠신 분이시고, 인간을 위해 어떤 위대한 일들을 하셨는지를 배워가면서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비참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깨달으며, 그 구원의 은혜에 대해 참으로 크게 감사하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영적 상태가 신령한 세계에 대해 깨달음이 부족하고, 새생명의 실질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유아기적인 상태에 있다는 것과 자신 안에 여전히 죄성과 아상과 연약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세를 취할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 그분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한답시고 무엇을 많이 행하려고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무리하게 무엇인가를 많이 행하려고 하기 보다는 말씀 곧 생명의 양식을 섭취하며 자꾸 자라가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2장22절에서,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맣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을 향하여 자라가야 할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자라가야 하냐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입니다. 그리스도적인 덕성과 성품을 발휘하고, 하나님나라의 세계에 대한 풍성한 깨달음과 자태를 갖추어가는 일에까지입니다.

갓난 아이에게는 무엇인가를 자꾸 시키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건강하게 자라가는 것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나 세계에 대한 풍성한 깨달음이나 각성이 없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자꾸 행하려다 보면, 시간을 낭비하고 정열을 낭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고 지지하지 않으신 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벌이므로 오히려 하나님나라의 진행이나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슬릴 수 있게도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가 아직 자라가야 할 때이고, 자신의 상태가 무지하고 비참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따라와야 할 것은, 자기부인의 사실입니다. 자기(인간)의 지혜와 생각과 힘 등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것을 통틀어 아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도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아니고, 지지 혹은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종교적인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이라고 자신이 판단하여 행하는 것 또한 아상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행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은, 성경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고,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여 말씀을 연구하는 자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적인 일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의 성도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인도를 받고, 신령한 생활이나 사명을 수행하게 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말입니다.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교회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성도를 양육하고 보호하고 지도하고 훈련할 기관으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젠 철저히 교회중심적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심적이 된다는 말은, 자신의 가정생활, 직장생활, 신앙생활 등등의 삶의 모든 영역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다른 지체들과 함께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도움이나 양육이 없이는 사살상 건강한 신앙생활을 한다거나 자란다거나 무슨 사명을 수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중심적이어야 한다"는 말 가운데 덧붙이고 싶은 것은, 교회의 신령한 행보 가운데 자신의 인생의 가치와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신령하게 살아가고 사명적인 인생을 살아가려면 건강한 교회의 한 회원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랜 교회의 한 분자로 살아가는 가운데 그 사람의 은사와 재능과 사명을 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요긴한 것에 사용하는 그릇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으려면, 신령하게 장성해야 하겠다는 것과 건강한 교회생활을 해야 하겠다는 것과 자신의 아상을 내려놓겠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의 장래의 가능성이나 무엇인가를 이루어보겠다는 야망 등을 내려놓지 않고는 사실 순수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인도를 받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면 사람이 거부를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 위치에 서서 그릇노릇을 할 것이고,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무슨 거창한 계획을 꾸미고, 어떤 자격을 갖추려고 한다고 해고 하나님의 지지나 인도하심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까지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정말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표일 것입니다.

신앙이 어릴 때에는, 자신의 위치와 상태가 사실 그런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아서 하루 아침에 성숙한 위치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세계나 진리가 짧은 시간에 깨닫고 정립할 수 있다거나 그 실질을 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신령하게 자라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성숙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곳에 적절히 쓰임받기를 소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목표로 딱 정해놓고 행해서는 도무지 하나님의 다른 뜻을 생각하지 못하고 막히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성신님의 깨닫게 하심을 구하면서 말씀 앞에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