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新고전]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
|
|
|
|
|
어린아이가 자아(自我)를 가지는 순간은 어느 때일까, 아마도 아이가 엄마와 눈을 맞추며 심각하게 ‘엄마, 난 어디서 왔어?’를 묻는 순간이 아닐까. 매일 매일 세상이 즐겁고 신기하기만 하던 아이는 어느 순간, 자신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 날인가, 아이는 엄마가 동생이라고 말하는 갓난아기와 마주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갓난아기는 조금씩 자라나고, 아이는 자신 역시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자신도 동생처럼 어린 아기에서 조금씩 변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물은 자라고 있으며 그 변화되는 과정을 거꾸로 되짚어 가다 보면 원래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논리적 공식을 깨달은 아이는 엄마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서 왔느냐고. 그리고 그 순간 아이의 사고 폭은 빅뱅을 거쳐 독립된 인격체로 성큼 자라날 것이다.
인류 문명과 지혜의 깨달음도 바로 이 시점에서 생각되지 않았을까.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인류탄생설화는 존재한다. 때로는 진흙에서, 때로는 나무에서, 때로는 돌멩이에서 생겨나는 등의 차이는 있지만, 아무리 작은 부족이나 촌락에도 저마다 기원이 되는 뿌리가 있다. 이는 인류에게 먹고 자고 섹스하는 수준의 생물학적 본능을 넘어서, 자신의 유래를 거슬러 조상의 시원(始原)을 찾기 위한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가짐으로써 인간의 정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면서 말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인류의 기원, 생물의 기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구와 우주의 최초 시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래전, 우리의 조상들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들은 전지전능한 존재인 신의 말씀으로 과거를 믿었으며, 밤하늘의 별을 읽고 점성술로 미래를 예언하며 복잡한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찾으려 했다. 아직도 하늘을 읽고 인간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 방법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현대인들은 ‘과학’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우주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과학책은 사실에 치우쳐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기 쉽다. 그렇다고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와 은유를 지나치게 사용하다 보면 과학의 본질에서 멀어지기 십상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면서도 내용이 알찬 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영문판으로만 600만 부가 넘게 팔리는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21세기 신고전으로 꼽히게 된 이유일 것이다.
세이건은 복잡하고 골치 아플 것 같기만 했던 우주의 시작과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그 옛날 모닥불 곁에 둘러앉아 현명한 노인이 어린 소년들에게 신과 거인과 요정이 지배하던 신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한다.
인터넷과 TV가 쏟아내는 정크푸드에 질린 현대인의 뇌를, ‘코스모스’의 나직한 어조와 사진들은 정성들여 끓인 진한 죽처럼 풍부하게 감싸준다. 그리고 덤으로 ‘코스모스’는 당신이 ‘창백한 푸른 별’에 홀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마음의 위안까지 안겨 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 |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
|
|
|
|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지음/이상헌 옮김/503쪽 1만8900원/김영사▼
과학 대중화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미국의 우주계획을 선도하고 ‘코스모스’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펴낸 칼 세이건은 62세의 아까운 나이에 지병으로 이승을 떠나기 직전 457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집필했다.
투병생활을 하며 그가 끈질기게 매달린 주제는 과학의 ‘그레샴 법칙’, 곧 나쁜 과학이 좋은 과학을 몰아내는 풍조였다. ‘나쁜 과학’이란 다름아닌 사이비 과학이다.
사이비 과학은 ‘X파일’과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를 망라한다. 이를테면 텔레파시, 염력, 투시력 따위의 초능력에서부터 점성술, 비행접시, 외계인, 상온핵융합, 바이오리듬에 이르기까지 초자연적이고 신비스러운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과학법칙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사이비 과학이라 불러야 하는 것이다.
세이건은 이러한 가짜 과학이 미국 사회에 횡행하는 사례를 집대성해서 철두철미하고 흥미진진하게 분석한다.
그는 사이비 과학이 득세하게 된 원인으로 과학 계몽의 실패를 꼽는다.
미국의 경우 95%가 ‘과학문맹’이라는 것이다. 겨우 5%의 인구가 과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그가 내놓는 처방은 자나깨나 ‘과학 대중화 운동’이다.
세이건은 과학이 인류를 가난으로부터 탈출시킬 수 있고, 지구환경에 초래할 위험을 사전에 경고해주며, 우주와 생명의 기원과 본질을 밝혀 줄 뿐 아니라, 과학의 가치와 민주주의의 가치가 일치하기 때문에 반드시 일반대중이 과학에 관심을 갖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이비 과학의 중심에는 이른바 ‘뉴 에이지’ 운동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뉴 에이지의 전도사인 프리초프 카프라가 1975년 펴낸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이 번역 출판된 것을 계기로 1980년대부터 신과학 열풍이 불었다.
양자역학과 동양의 신비주의가 우주를 설명하는 방법에서 유사성이 적지 않다는 카프라의 주장이 일부 지식인을 매료시켰음은 물론이다.
뉴 에이지 과학이 ‘신과학’으로 불림에 따라 ‘새로운 과학’ 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기 때문에 과학에 관한 식견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것이 사이비 과학임에도 불구하고 뉴 에이지를 ‘새롭고 좋은’ 과학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대과학을 무조건 비판하는 반과학적 행태가 마치 진보적 지식인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용인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을 정도로 가짜 과학이 득세하고 있다.
세이건은 ‘사이비 과학의 화려한 속임수 앞에 과학이 무릎을 꿇으면 비판적 사고방식의 실종으로 미신과 불합리가 판치는 사회가 된다’고 경고한다.
이 책의 부제는 ‘과학, 어둠 속의 작은 촛불’ 이다. 어둠 속에서 인류에게 길을 밝히는 촛불이 꺼지면 악령들이 판치는 세상이 올 터. 악령은 다름 아닌 사이비 과학이다. 과학 대중화에 무관심한 과학자들에게 감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동아일보 2001년 8월 11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