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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라사대, “나를 무엇엔가 비교해 보아라. 그리고 내가 무엇과 같은지 말해 보라.” 2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의로운 천사 같나이다.” 3 마태가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현명한 철학자 같나이다.” 4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스승님이시여! 제 입은 지금 당신이 무엇과 같은지 전혀 언표(言表)할 수 없나이다.” 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그대의 스승도 아니로라. 그대는 내가 보살펴온, 부글부글 솟아오르는 광천샘으로부터 직접 많이 마셨기에 취하였도다.” 6 그리고 예수께서 도마만을 데리고 은밀한 곳으로 가시었다. 그리고 도마에게 세 마디 말씀을 전하였다. 7 도마가 그의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을 때에, 그들이 도마에게 물었다: “예수께서 너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뇨?” 8 도마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내가 예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 중 하나만 너희에게 이야기해도, 너희들은 돌을 주워 나를 쳐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리하면 너희 손에 있는 그 돌로부터 불길이 솟아 너희들을 삼켜버릴 것이다.”
1 Jesus said to his disciples, “Compare me to something and tell me what I am like.” 2 Simon Peter said to him, “You are like a righteous angel.” 3 Matthew said to him, “You are like a wise philosopher.” 4 Thomas said to him, “Teacher, my mouth is utterly unable to say what you are like.” 5 Jesus said, “I am not your teacher. Because you have drunk, you have become intoxicated from the bubbling spring that I have tended.” 6 And he took him, and withdrew, and spoke three sayings to him. 7 When Thomas came back to his friends, they asked him, “What did Jesus say to you?” 8 Thomas said to them, “If I tell you one of the sayings he spoke to me, you will pick up rocks and stone me, and fire will come from the rocks and devou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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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장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우리가 현재 4복음서의 기술에서 느끼는 대로라면 당연히 베드로가 가치서열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할 텐데, 베드로가 가장 저열한 수준으로 깔려버리고 도마가 모든 제자들의 압도적인 우위(superiority)를 차지하고 있다. 도마복음의 서장(Prologue)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복음서는 “살아있는 예수께서 이르시고 쌍둥이 유다 도마가 기록한 은밀한 말씀들”이다. 그런데 도마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예수의 생애의 사건의 출연자로서 등장하고 있다. 그 등장을 연출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내레이터가 있다. 도마의 1인칭 기술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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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의 기술에 따르면 예수는 두로·시돈·데가볼리 지방을 거쳐 갈릴리 호수로 돌아왔다가, 다시 벳새다를 거쳐 가이사랴 빌립보로 갔다. 나는 가이사랴 빌립보에 가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헤르몬산의 물이 지하암반으로 숨어들었다가 이곳에서 콸콸 솟아오르는데 청정하기 그지없다. 이 물이 헤르몬강이 되어 요단강을 이루고 또 갈릴리 호수로 흘러 들어간다. 도마복음서에도 “부글부글 솟아오르는 광천샘으로부터 네가 많이 마셨기에 취하였도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가이사랴 빌립보에 와보면 “솟아오르는 광천샘”이란 말이 실감이 난다. 영풍무우(詠風舞雩)의 분위기가 감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 지역을 함락한 후, 이집트의 왕 프톨레미3세와 안티오쿠스3세는 이 지역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BC 198). 승리자 안티오쿠스는 갈릴리의 수원지이며 고대로부터 중요한 캐러밴 루트의 휴식지인 이곳의 동굴을 그리스 신화의 목동들의 신인 판(Pan)에게 바치고 파네인(Panein)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래서 이 부근 동네를 파니야스(Paneas)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바니야스(Banyas)라고 부른다. 로마 통치시절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 땅을 헤롯 대왕에게 관할토록 했는데, 헤롯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아우구스투스 신전과 판 신전을 지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예수는 이 판 신전 앞에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다.
도마복음의 기술은 직접적으로 제자들에게 나를 무엇인가에 비교해서 내가 무엇과 같은지, 누구와 같은지를 말해 보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공관복음서의 기술은 보다 간접적으로 타인들의 여론을 묻는 방식으로 질문을 꺼낸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니까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마태 첨가),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이제는 다시 예수가 묻는다: “남의 말이 아니고, 이제 너희 스스로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두 번째 예수의 질문은 도마복음서의 질문과 같다. 그러나 공관복음서의 두 번째 질문은 오직 베드로의 정확한 담론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조준되어 있다. 베드로가 이미 타 제자들과는 격이 다른 어떤 우월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첫 번째 질문도 마가에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로 되어 있는데, 마태에는 “사람들이 인자(the Son of man)를 누구라 하느냐?”로 바뀌어져 있다. 마태의 기술은 처음부터 인자담론, 즉 종말론적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의 대답은 무엇이었던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You are the Christ.) 마태는 여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You are the Son of the living God)를 첨가하고 있다. 이미 노골적인 기독론(Christology)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도마복음의 전개방식은 그러한 기독론의 전제가 없다.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계보의 이전(異傳) 기술양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